무법정사에서 배운 진정한 봉사의 의미
토요일에는 절에 가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2년 넘게 '무법정사 용인 청소년의 집'라는 아동, 청소년 보육시설에서 교육 봉사를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기독교인이 목탁소리가 흘러나오고 향 피우는 냄새가 가득한 곳에서 봉사를 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종교적 차이를 뛰어넘는 봉사활동이 오히려 '봉사'의 개념을 확립하는데 더욱 큰 밑거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무법정사를 방문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아는 분의 소개로 찾아간 무법정사의 모습은 풍족한 환경에서만 자라왔던 나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컨테이너 박스로 된 사무실,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앉아 공부를 하는 아이들, 어둡고 침침한 복도 등 무법정사의 시설은 서른 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활한다고 보기엔 턱없이 부족해보였다. 무법정사에서 '엄마'로 통하는 무봉스님께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을 여쭤보고 친구들과 함께 초등학생 1:1 영어, 수학 과외를 하기로 하였다. 2010년 봄, 6명의 친구들과 함께 '친한 친구'를 뜻하는 순 우리말, '아띠'라는 이름의 봉사 동아리로 무법정사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내가 처음 가르친 아이는 제일초등학교 5학년 남동민이었다. 5학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은 체구를 가진 동민이는 수학도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영어는 알파벳도 다 외우지 못 할 정도로 학업이 부진한 상태였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지기 위해 교재도 가장 낮은 단계로 선정하여 사칙연산과 알파벳부터 가르쳤다.
가르치는 일보다 더욱 힘든 것은 동민이를 대하는 일이었다. 부모님 없이 자란 동민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말과 행동을 항상 조심했고, 학용품도 항상 최소한으로 가지고 갔다. 봉사를 갈 때에는 심지어 핸드폰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 동민이와 같이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도 있는 데에 비해, 나는 부모님의 넘치는 사랑을 받고 물질적으로도 부족함 없이 자라왔다는 것에 너무나도 감사하고 미안해서 동민이를 더욱 더 따뜻하게 대하게 되었다. 그러자 처음에는 쭈뼛쭈뼛하며 말을 걸어도 대답을 잘 하지 않았던 동민이가 마음의 문을 열어 같이 사진도 찍고 장난도 치며 봉사하는 내내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저절로 학업에도 흥미를 가져 수업시간에도 집중력이 늘었고, 숙제도 꼬박꼬박 해오게 되었다. 그 결과, 동민이가 원하던 것처럼 학교 시험성적도 많이 오르게 되었다. 동민이가 시험을 본 후 성적이 이만큼이나 올랐다며 나에게 자랑할 때엔 내가 더 뿌듯해하였던 것 같다.
동민이와 다른 무법정사 아이들과 함께 일 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추억을 쌓았는데,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라면 아이들에게 첫 크리스마스를 선물해 주었던 일인 것 같다. 아무래도 절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다 보니 크리스마스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고 스님께서도 아이들 수가 많아 한 명 한 명 챙기기 부담스러우셨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로부터 ‘산타할아버지한테 이런 선물을 받았다,’ ‘크리스마스 때 어디를 갔다 왔다.’ 라는 자랑을 들으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쓸쓸함을 느낄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치 내 친동생이 속상해하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친구들과 의논하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무법정사에 방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하여 아이들과 함께 트리를 꾸미는 시간을 가졌고, 모두를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하였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이 알록달록 빛나는 방에서 잘 수 있어서 매우 행복했다고 한다. 그 해 크리스마스는 나에게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라는 의미 이상의 것으로 다가왔다. 무법정사의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를 선물해줌으로써 종교의 차이를 뛰어넘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고차원적인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 다음 해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친구들이 서로 다른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어 '아띠' 활동을 계속 이어가는 것에 문제가 생겼다. 때마침 중학교 후배들이 무법정사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하여 중학교 후배들이 '아띠' 활동을 하게 되었고, 나는 고등학교에서 새로 친구들을 모아 무법정사에서 봉사활동을 계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띠'에서 활동을 하다가 수지고에 진학하게 된 친구는 수지고에서 같이 봉사활동을 할 친구들을 모집하여, 용인외고와 수지고가 연합한 'Dream E' 라는 봉사동아리를 만들게 되었다.
중학생으로 이루어진 '아띠'에서 계속 초등생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Dream E'에서는 중, 고등학생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나는 마장고등학교 2학년 최영윤 언니의 수학, 영어 공부를 도와주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인 내가 2학년 언니를 가르치다 보니 호칭, 수업태도 면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언니가 나이에 상관없이 배울 수 있는 것은 열심히 배우겠다고 말해줘서 Mentor-Mentee로써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로 발전해 나갈 수 있었다. 수업시간과 휴식시간을 구분하여 수업시간에는 고등수학과 영어독해, 텝스 등을 공부하고 휴식시간에는 같은 나이또래로서 겪는 고민과 일상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니와 함께한지 일 년이 조금 넘은 지금은 주중에도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졌다.
지난 5월에는 '아띠'와 'Dream E'가 연합하여 무법정사의 바자회 행사를 돕기도 하였다. 부모님들과 지인 분들의 도움을 받아 사람들이 쉽게 방문할 수 있고 장소도 훨씬 넓은 곳을 섭외하여 '사랑바자회'를 열게 되었다. 솜사탕기계, 팝콘기계도 빌리고 문구류, 서적, 의류도 지원 받아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였는데,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생각보다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바자회에서 얻은 수익으로 아이들의 책걸상을 교체하고 밀린 겨울 난방비를 결제할 수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니 바자회 봉사에서의 피곤함이 싹 가시는 듯하다. 처음 무법정사를 방문할 때부터 느꼈던 시설부족의 문제에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너무나도 행복했다.
가장 예민하고 반항심이 커지는 청소년 시기에 2년간 꾸준하게 무법정사를 방문하면서 느낀 점들은 내가 방황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아온 내 또래들을 만나고, 어린 나이에 나보다 더 많은 상처를 받으면서 자란 동생들을 만나면서 나에게 주어진 환경과 기회에 감사하고 내가 그들 몫까지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또한 종교적인 차원을 넘어선 봉사를 함으로서 환경과 조건을 따지지 않고 베푸는 것이 참된 봉사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배우지 못하고, 그로 인해 가슴 아플 정도로 현실적이고 제한적인 꿈을 가지고 사는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열리기를 매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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