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기보단 이해와 설득을
일반적으로 한겨레, 경향신문이 진보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신문들의 서로 다른 방향성은 사회적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사회를 바라보는 이러한 신문의 다양성은 사설, 기고 면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하지만 존중받아야 마땅한 다양한 견해와 날카로운 비판 없이 자신의 주장을 무분별하게 옹호하고 반대되는 주장은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글들이 눈에 띈다.
4달 전부터 0세부터 2세 유아들을 상대로 실시되었던 무상보육 정책이 각 지자체들의 예산 부족으로 중단 위기에 놓였다. 이 사태에 대해 각 신문에 실린 사설들을 비교해 본 결과, '진보적'인 신문들은 설득하기보다는 공격한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상대 의견을 이해하고 수렴하려는 노력 없이 일방적인 주장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7월 4일 한겨레신문에 실린 사설 '정부의 단견이 부른 무상보육 중단 위기'의 일부분을 보면 근거를 충분하게 제시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태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런 와중에 기획재정부는 재정 부담을 이유로 무상보육을 없애고 선별지원으로 돌리자는 의견을 내놓아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정부 부처들이 탁상행정으로 소요 재원을 잘못 추계하고 대책 마련을 게을리한 것만으로도 비난받아 마땅한데, 시행 4개월여 만에 제도를 뿌리째 흔들고 있는 것이다. 무상보육은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주요한 대책이자 미래를 위한 투자로서 도입됐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여기서 주장하는 바는 '선별 지원을 도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인데 그저 '혼란을 부추긴다'라는 문제점을 언급한다. 선별적 무상 보육이 시행될 때 나타나는 피해자는 몇 명 정도이고 어떠한 사회적 혼란이 생기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면 더욱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사실들을 통해 정책의 문제점에 대한 사회적 설득을 하려하지 않고, 그 분량을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반복된 공격적 문구로만 채우고 있어 안타깝다. 그리고 무상보육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있어서도 부족함이 보인다. 미래 지향적이고 추상적인 근거를 말하고 싶다면 최소한 그 당위성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무상 보육을 시행하는 선진국의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예시로 들어 주장을 뒷받침했다면 보다 설득력있는 비판과 대안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추상적인 목표만을 제시하고 거기에 맞지 않는다고 정부정책을 비난한 것은 정부의 잘못을 떠나 이해하기 힘든 방식의 비판이었다고 생각한다.
같은 날 경향신문에 실린 사설 '‘보육대란’도, 무상보육 정책의 후퇴도 안된다'에서도 유사한 문제점이 보인다.
"참다운 복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선별적 복지 제도가 보편적 복지 제도로 바뀌어야 한다는 면에서도 전면 무상보육 정책은 유지돼야 한다. “국가가 재벌의 아들과 손자에게도 보육비를 대줘야 하느냐”면서 전면 무상보육에 반기를 든다면 복지 사회 실현은 요원할 뿐이다. 국가의 복지 혜택은 누구나 누리도록 하면서 필요 재원은 능력에 따라 세금을 더 걷는 방식으로 확보해 나가야 한다. 학교 무상급식 논쟁을 거치면서 어렵게 형성된 보편적 복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허물어서는 안된다.
정부는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전면 무상보육 제도를 선별 지원 방식으로 바꾸려는 발상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자치단체와 함께 전면 무상보육에 필요한 예산 확보 대책을 마련해 부모의 불안을 불식시켜야 할 것이다. ‘보육대란’을 반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우선 이 글에서 언급하는 '참다운 복지 사회'에 의문이 생긴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따르면 복지 사회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고, 어떤 특수한 장애나 어려움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사회를 말한다. 우리나라가 아직 완벽한 사회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더라도 보편적 복지제도가 도입되어야 하는 이유가 설득력 있게 언급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아직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뤘다고 속단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표현이다. 복지 포퓰리즘에 의해 보편적 정책들이 사회적 합의 이전에 실시된 것이라 생각하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견해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입장이 국민과 여론을 대표한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한 선택이었다.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에 실린 사설 모두 계속 자기 의견만 내세울 뿐 독자들을 설득시킬 만한 근거가 충분하지 못하였다. 만약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왜 반대 의견이 문제가 되고 자신의 의견이 더 옳은 방향인지 자세하게 설명했다면 보다 설득력 있는 글로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신문은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이 아닌 당위성을 반복하는 수준의 반론을 펴고 있고, 글의 설득력을 높여야하는 부분을 무시하고 공격적 어조로 대중을 선동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을 다양성이라 말할 수 는 없다. 논리가 없는 비판이 다양성으로 포장될 수는 없다.
신문들이 사회문제에 대한 시각의 다양성을 표출하는 것은 좋지만, 무조건적으로 자기 의견만 내세우기 보다는 올바른 근거를 제시하고 상대 의견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등 보다 성숙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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